누가 앙리에타 마리 드 프랑스 왕녀와 결혼 했습니까?
Charles I of England 결혼 한 앙리에타 마리 드 프랑스 왕녀 .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 결혼식 날 15 세였다 (15 년 6개월 19일). Charles I of England 결혼식 날 24 세였다 (24 년 6개월 15일). 나이 차이는 8 년 11개월 27일 이었다.
앙리에타 마리 드 프랑스 왕녀
프랑스의 앙리에트 마리(프랑스어: Henriette Marie de France, 영어: Henrietta Maria of France, 1609년 11월 25일 ~ 1669년 9월 10일)는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막내딸이며 잉글랜드 왕 찰스 1세의 왕비이다.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의 모후이며 윌리엄 3세의 외조모이자 메리 2세와 앤 자매의 조모이다.
1533년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이래 잉글랜드는 엘리자세스 1세 시대를 거치며 성공회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국민들은 카톨릭 교도인 왕비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더불어 왕의 총신 버킹엄 공작의 이간질로 신혼초에 부부관계는 좋치 못했다.
1640년대에 잉글랜드에서 내전(청교도 혁명)이 발발하자 남편을 돕기 위한 전쟁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내전상황이 왕당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녀들과 프랑스로 피난하였으나 프랑스에서의 삶은 곤궁했다. 1649년에 남편 찰스 1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이 시작되자 어려움은 배가되었다. 1660년에 왕정복고가 되면서 아들 찰스 2세가 즉위한후 잉글랜드로 돌아갔다가 말년에는 프랑스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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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I of England
찰스 1세 (1600년 11월 19일 ~ 1649년 1월 30일)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왕이다. 1625년 3월 27일 즉위하여 1649년 처형될 때까지 재위하였다.
스튜어트 왕조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차남으로 태어났다. 1603년 제임스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여 제임스 1세가 된 뒤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1612년 웨일스공이었던 형 헨리 프레더릭이 사망하자 왕위계승권자가 되었다. 스페인 마리아 아나와 혼담이 오갔으나 1623년 직접 스페인을 방문하여 8개월간 머물며 진행한 협상 끝에 결렬되었다. 1625년 즉위 직후 프랑스의 앙리에트 마리와 결혼하였다.
즉위 첫 해부터 찰스 1세는 군주의 특권을 제약하려는 잉글랜드 의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여 의회 간섭없이 전제군주로 통치하고자 하였으나 의회는 동의 없는 징세 등 행위를 폭정으로 인식하였다. 프랑스 공주를 왕비로 맞은 뒤 로마가톨릭을 옹호한다는 평이 돌면서 개신교 교도들 반감이 커졌는데, 특히 장로제를 기반으로 하는 잉글랜드 청교도와 스코틀랜드 언약도 반발이 컸다. 찰스 1세는 공식적으로 잉글랜드 교회 수장으로서 성공회의 고교회 운동을 지지하였으나 30년 전쟁이 벌어지는 유럽 대륙의 개신교 군대에 대한 지원은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종교개혁에 관한 찰스 1세 본심을 의심하였다. 장로제를 채택한 스코틀랜드 교회에 성공회 관례와 주교제를 강요하려는 시도는 주교 전쟁으로 이어졌고 스스로 몰락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었다.
1642년 찰스 1세와 의회 갈등은 결국 잉글랜드 내전으로 폭발하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는 원두당을 결성하고 왕당파인 기사당 군대와 싸웠다. 개전 초기에는 전쟁 향방을 알기 어려웠지만, 1645년 의회군이 신형군을 결성한 뒤 전세가 기울어 찰스 1세는 옥스포드에서 퇴각하여 북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그나마 스튜어트가에 온정적이었던 스코틀랜드 군대에 항복하였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 사이 오랜 협상 끝에 런던 장기의회로 넘겨졌다. 찰스 1세는 의회 입헌군주제 요구를 거부하다가 1647년 11월 잠시 탈출하였으나 다시 붙잡혀 아일오브와이트에 투옥되었다. 그 사이 스코틀랜드 언약도가 왕당파로 돌아서며 다시 내전이 벌어졌지만, 잉글랜드 신형군은 1648년 말까지 잉글랜드 내 봉기를 진압하며 내전을 종결지었다. 의회파는 찰스 1세를 반역죄로 기소하여 1649년 1월 처형하였다. 이후 의회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인 잉글랜드 연방을 수립하였다. 잉글랜드 연방은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 사망후 급속히 구심력을 잃었고, 1660년 찰스 1세 아들 찰스 2세가 국왕으로 즉위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찰스1세는 잉글랜드 종교 개혁 이후 잉글랜드 성공회가 시성한 유일한 국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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